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종교 철학 강의를 듣고 나온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바로 사바하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검은사제들을 만든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라는 말에, 예고편의 섬뜩한 분위기에 속아서 공포 영화인 줄 알고 앉았다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마주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바하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리고 어디서 아쉬움이 남는지를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오컬트 영화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관 좌석에 앉을 때만 해도 저는 박 목사가 십자가를 들고 악령과 싸우고, 사천왕과 오컬트 히어로들이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았고,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했으며, 중반을 넘어서자 공포보다는 미스터리와 철학 쪽으로 완전히 무게중심이 이동해 있었습니다.
사바하의 핵심은 초자연적 존재의 실체보다 믿음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신앙인이 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내적 욕구를 뜻합니다. 박 목사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뒤 신에 대한 회의(懷疑), 즉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상태에 빠진 인물입니다. 그는 가짜를 가려내는 일을 하면서 사실 진짜를 찾고 있습니다. 그 모순이 이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듭니다.
사이비 종교 단체 사슴동산의 경전에는 예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예언의 연원을 따라가 보면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이 등장합니다. 연기설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불교의 핵심 원리로,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 관계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는 이 원리를 플롯의 뼈대로 사용합니다. 김제석과 그것(미륵)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가 성립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찾아봤는데, 이 구조를 알고 나니 영화의 결말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단순한 악당 처치가 아니라, 하나의 집착이 소멸하면서 그에 연결된 존재도 함께 사라지는 필연적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 박 목사: 신앙을 가지면서도 신을 의심하는 이중적 존재, 스토리의 관찰자
- 정나한: 맹목적 믿음의 화신, 사이비 신봉의 실체를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
- 김제석: 초자연으로 포장됐지만 실은 집착과 공포로 움직이는 인간
- 그것(미륵): 절대적 존재인지, 그냥 박해받은 존재인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음
반전은 예상했지만, 유지태가 등장한 순간 이미 눈치챘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 아니었습니다. 유지태가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저는 직감적으로 "저 사람이 진짜 김제석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비중 있는 배우를 단순한 조연으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는 걸 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알기 때문입니다. 반전의 묘미가 그 지점에서 살짝 희석된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의 구조 자체는 영리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노인이 진짜 김제석인 줄 알았는데, 그가 사실 대역이었고 젊고 멀쩡한 유지태가 진짜였다는 설정. 이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개념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란 기독교 종말론에서 등장하는, 신을 사칭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김제석은 늙지 않고,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의 절대적 경배를 받으며, 종교 지도자들조차 그를 인정합니다.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의 면모죠.
그런데 영화가 결정적으로 꿰뚫는 장면이 있습니다. 코끼리 운송비 9,000만 원을 아까워하는 김제석의 대사입니다. 죽어가는 동물 앞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는커녕 물질적 손실만 계산하는 그 순간, 김제석은 신도 미륵도 아닌 그냥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 하나가 긴 설명보다 훨씬 강렬하게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한편으로 정나한의 이름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라한(阿羅漢)에서 따온 이름으로, 아라한이란 불교에서 수행의 궁극에 이른 깨달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나한은 손가락 여섯 개라는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 하나에 흔들려 가짜 미륵을 진짜로 믿어버립니다. 이름과 실제 사이의 이 아이러니가, 영화가 말하는 맹목적 믿음의 위험성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박정민의 연기가 이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을 정말 섬세하게 살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연기였습니다.
참고로 불교의 미륵(彌勒)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미륵이란 석가모니 다음 시대에 출현할 미래불(未來佛)로, 56억 7천만 년 후에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원한다고 전해지는 존재입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화 속 그것이 미륵인지 아닌지는 결코 단언되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선택입니다.
공포 연출은 훌륭했는데, 웃음 코드가 영화의 발목을 잡았다
제가 직접 영화관에서 보면서 느낀 건데, 점프스케어(Jump Scare), 즉 갑작스러운 시각·청각 자극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출이 거의 없었음에도 상당히 불안한 긴장감이 유지됐습니다. 이건 쉬운 게 아닙니다. 사운드 디자인과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능력이 장재현 감독에게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정나한이 금화의 집에 침입해 창고로 향하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었습니다.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을 읊으며 걸어오는 정나한과 뱀들을 불러 막으려는 금화의 대치가 말없이 긴장감을 쌓아올립니다. 그리고 둘이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호러가 아니라 묘하게 숙연한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이 나중에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박 목사의 코미디 코드입니다. 박 목사가 심 권사에게 던지는 가벼운 농담들,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유머 장면들이 영화의 무게감을 툭툭 끊어놓습니다. 완급 조절 차원의 유머가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바하의 농담들은 영화의 톤과 결이 너무 달라서,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재현 감독이 검은사제들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감독의 유머 감각이 공포 연출 감각만큼 정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한국 오컬트 장르의 계보를 생각해보면, 이우혁의 퇴마록이 전설과 무속신앙, 가톨릭, 밀교를 총동원했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한국형 오컬트의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바하는 그 계보에서 나름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연출의 정밀도나 서사 구조의 밀도에서는 곡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저도 그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바하는 공포 영화인가요, 스릴러인가요?
A. 마케팅은 공포 영화처럼 했지만 실제 장르는 오컬트 미스터리에 훨씬 가깝습니다. 점프스케어나 공포 장면보다는 종교적 서사와 인물의 심리가 중심이라, 공포를 기대하고 가면 다소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스터리와 종교 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께 더 맞는 영화입니다.
Q. 영화 결말에서 미륵(그것)이 왜 죽나요?
A. 불교의 연기설 구조 때문입니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원리대로, 김제석이 사라지면서 그것도 함께 소멸합니다. 둘은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성립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영화는 그것이 농약을 먹었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등, 완전히 초자연적으로만 해석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둡니다.
Q. 김제석이 진짜 신이냐고 물어봤을 때 영화의 답은 뭔가요?
A.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게 의도입니다. 김제석이 진짜 초자연적 존재인지보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물리적 현실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존재의 진위가 아니라 믿음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Q. 사바하 스포일러 없이 봐도 재미있나요?
A.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종교적 상징과 인물 이름의 의미를 미리 알고 보면 훨씬 더 많은 걸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해석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는 보고 나서 한참을 찾아봤습니다.
결론
단순히 공포 영화로 생각하고 갔다가 인생 영화를 만난 느낌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사바하는 겉으로는 오컬트 공포물이지만 속은 믿음, 집착, 사이비 종교의 구조를 꽤 진지하게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10점 만점에 7점이라는 평가가 저에게도 가장 적절하게 느껴집니다.
코미디 코드가 없었다면 8점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계속 아쉽습니다. 하지만 박정민의 연기, 분위기 연출,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은 분명히 이 영화만의 강점입니다. 오컬트 장르나 종교 철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결말 해석을 찾아보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영화 관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더 만족스러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