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인데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말,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웜바디스를 극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니콜라스 홀트가 좀비로 나온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공포 대신 사랑과 희망으로 채워진 이 영화는 기존 좀비물과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습니다.

좀비 로맨스라는 장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좀비 영화를 고르다 보면 늘 비슷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액션과 공포로 가득한 아포칼립스물을 원하는 관객과, 그냥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걸 원하는 관객 사이의 간극이 꽤 크거든요. 저는 친구들과 영화관에 갔는데, "좀비 영화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이었습니다.
웜바디스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핵심은 좀비 알(R)과 인간 줄리의 관계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즉 문명 붕괴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 절망적 상황을 공포가 아닌 로맨스의 무대로 재해석했습니다. 여기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핵전쟁, 바이러스 등으로 기존 사회 질서가 무너진 이후의 세계를 의미하는 장르적 설정으로, 통상적으로는 생존과 절망이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설정을 거들뿐, 중심에는 감정의 회복을 놓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주변 관람객들이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는 장면이 꽤 있었습니다. 좀비가 자기 취향대로 물건을 모으거나,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속으로 장문의 독백을 늘어놓는 장면들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됐거든요. 그 균형이 생각보다 잘 맞았습니다.
이 영화가 종종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인간 진영과 좀비 사이의 벽, 그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 구조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고전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IMDb 웜바디스 작품 정보).
-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이지만 공포보다 감정의 회복에 집중
- 코미디와 로맨스의 균형이 극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 로미오와 줄리엣 구조를 현대 좀비물에 자연스럽게 접목
인간성 회복 —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순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좀비 영화에서 주인공의 내면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웜바디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바로 내레이션(Narration), 즉 주인공 R의 독백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내레이션이란 등장인물이 직접 말하지 않고 목소리로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말을 거의 못 하는 좀비의 특성을 역으로 활용한 것인데, 이게 꽤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R은 비행기 안에서 살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좀비의 일상 속에서 줄리를 만나고 나서 멈춰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줄리를 좀비들로부터 숨겨주고, 피를 묻혀 인간 냄새를 숨겨주고,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는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관객도 자연스럽게 이 좀비에게 정이 들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개념이 카타르시스(Catharsis)적 감정 변화입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이 쌓이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를 의미합니다. R이 꿈을 꾸기 시작하고, 공항의 다른 좀비들도 손을 잡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단순히 한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집단적인 인간성 회복의 시작으로 확장되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웜바디스 평점 및 리뷰).
다만 세계관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개연성이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왜 사랑이 좀비를 치료하는지, 해골 좀비 보니는 어떤 원리로 다른 좀비들과 다른지 — 이런 설정들이 감각적으로만 처리되다 보니 논리적으로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저는 이 점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감동 결말 — 벽이 무너지는 방식에 대하여
영화 후반부는 솔직히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 구조 자체가 워낙 클리셰(Cliché)에 충실하거든요. 클리셰란 너무 자주 사용되어 신선함을 잃어버린 익숙한 서사 패턴을 말합니다. 적대적인 두 집단, 그 사이를 잇는 연인, 오해와 갈등, 그리고 화해. 이 구조는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말 장면에서 눈물을 참은 관객이 저 말고도 꽤 있었습니다.
R이 인간들의 마을까지 직접 걸어와 줄리를 찾아가고, 좀비와 인간이 함께 보니(해골 좀비)를 물리치는 장면. 군인들이 좀비를 구해주는 좀비를 목격하면서 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장면. 그리고 R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줄리의 아버지, 총사령관이 "좀비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장면.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쌓이면서 감동이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좀비들이 손을 잡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말 한 마디 없이 표정 하나로 모든 걸 전달하는 그 장면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을 잃고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좀비에 빗댄 감독의 의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삶에 의미가 생긴다는 주제가 이 한 장면에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가볍게 보기엔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연인끼리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잔인한 장면을 못 보는 분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만 하드코어 좀비 영화 매니아라면, 액션과 공포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이 클 수 있으니 이 점은 미리 알고 가시길 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웜바디스 좀비 영화 맞나요? 무섭지 않나요?
A. 좀비 영화라는 분류가 맞긴 하지만 공포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잔인한 장면도 최소화되어 있어서 공포물을 못 보는 분도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분위기는 로맨스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Q. 니콜라스 홀트가 좀비인데 연기가 괜찮나요?
A. 말을 거의 못 하는 좀비 캐릭터인데도 표정과 눈빛만으로 감정을 충분히 전달합니다. 내레이션으로 속마음을 들려주는 구조 덕분에 캐릭터에 빠르게 감정 이입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캐릭터 덕분에 영화 내내 정이 들었습니다.
Q. 연인이랑 같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네, 충분히 추천할 수 있습니다. 잔인하지 않고 로맨스와 코미디 균형이 잘 맞아서 데이트 무비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보고 나면 훈훈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올 수 있습니다.
Q. 스토리가 너무 뻔하지 않나요?
A. 솔직히 큰 틀의 결말은 예상됩니다. 두 집단의 화해라는 구조 자체가 익숙한 편이라 반전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다만 과정에서의 감정선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어서 결말을 알고 봐도 감동이 유효한 편입니다.
결론
좀비 영화인데 보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웜바디스는 충분히 좋은 선택입니다. 공포와 액션을 기대하고 간다면 분명히 실망하지만, 사랑과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에 열려 있는 분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걸 가져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극장에서 친구들과 봤는데, 끝나고 나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좀비처럼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날, 곁에 있는 사람이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한 번쯤 가볍게 볼 만한 영화로 추천드립니다.